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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2040 수능 폐지’ 제안…이상과 현실 사이,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2025년 12월 12일 · 5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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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이 2028·2033·2040으로 이어지는 3단계 대입 로드맵을 내놓으며 2040학년도 수능 폐지를 공식 제안했다. 취지에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상위권 대학의 희소성, 평가 공정성, 사교육 증폭 등 현실적 과제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지금 필요한 건 ‘폐지냐 유지냐’ 이전에, 누구에게 어떤 공정성을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설계다.

1. 무엇이 발표됐나: 3단계 로드맵 핵심

서울시교육청은 대입 제도를 3단계로 개편하자는 구상을 제안했다. 첫 단계는 2028학년도 개선안으로, 진로·융합 선택과목의 절대평가 전환과 지역균형 선발 확대 등이 포함됐다. 이는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반영해 ‘성취 중심’ 평가를 강화하겠다는 방향성으로 읽힌다.

두 번째 단계인 2033학년도 개편은 내신과 수능 전 과목의 절대평가 전환을 골자로 한다. 동시에 수능에 서·논술형 평가를 도입해 2033년 30%, 2037년 50% 이상으로 확대하는 계획이 제시됐다. 변별을 객관식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마지막으로 2040학년도에는 수능 자체를 폐지하고 학생 개개인의 고교 교육과정 이수와 성장 이력을 중심으로 대학이 선발하는 체제를 제안했다. 문제은행식 범교과 융합형 면접 같은 평가 도구도 보완재로 언급됐다.

2. ‘2040 수능 폐지’ 제안의 배경과 논리

핵심 논거는 인구 구조 변화다. 15년 뒤면 학령인구가 대학 정원보다 현저히 적어져 ‘선발을 위한 변별’의 필요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가정이다. 이 경우 정량 한 점수로 줄 세우는 대입보다, 학생의 역량 성장과정과 고교 교육의 충실도를 반영하는 방식이 합리적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선택지형 문제풀이 중심의 시험이 학습을 왜곡하고, 학교 수업을 시험 준비로 수렴시킨다는 비판도 배경이 됐다. 교육과정 충실도와 교실 수업의 복원을 위해 평가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3. 즉각 쏟아진 비판: 이상과 현실의 간극

교육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 적용 가능성에는 의문이 이어졌다. 특히 상위권 대학 쏠림이 심한 구조에서 ‘시험을 바꾸면 경쟁이 완화된다’는 단순한 기대는 성립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희소한 자원(상위권 대학 좌석)이 존재하는 한, 어떤 평가든 변별의 다른 형태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학 자율 선발이 확대될 경우, 구술·논술·서류평가 등 고비용 방식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비용과 정보에 접근성이 높은 가정이 유리해지면 교육격차는 되려 커질 수 있다.

4. 변별력 약화의 파장: 면접·서류·논술로의 이동?

수능을 절대평가화하면 일정 수준 이상이 모두 같은 등급으로 묶이기 때문에 변별력은 완화된다. 문제는 대학이 그대로 손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상위권 대학은 필연적으로 다른 평가를 강화해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는 영미권 상위 대학의 운영에서도 자주 관찰되는 흐름이다.

변별력이 약해질수록 대학은 더 많은 정보를, 더 깊은 수준에서, 더 높은 비용으로 수집하려 한다. 그 사이 사교육 시장은 ‘구술·논술·서류 컨설팅’ 분야로 빠르게 재편될 수 있다.

따라서 절대평가 전환이나 서·논술형 확대는 그 자체가 목표가 되기보다, 비용·공정성·검증 가능성에 대한 촘촘한 보완장치와 함께 설계돼야 한다.

5. 성장 이력 기반 선발, 정말 공정한가

성장 이력 중심 평가가 이상적으로 들리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학교 간 교육력 격차, 지역·재정·교사 전문성 차이를 그대로 반영할 위험도 있다. 결국 ‘좋은 학교’와 ‘그 외’의 간극이 성적표에 녹아들 수 있다.

고교학점제 시행 이후 학교별 강좌 개설 역량 차이가 이미 드러나고 있다. 프로젝트·탐구·포트폴리오 평가를 확대하려면, 교사 업무 재설계와 평가 표준화, 외부 검증 체계가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이는 활동’에 쏠리는 과시형 스펙이 늘고, 정작 수업의 내실은 약해질 수 있다.

6. 학령인구 감소와 상위권 쏠림: 오해와 사실

학령인구 감소가 모든 대학의 경쟁을 완화시키진 않는다. 지방대의 미충원이 늘어도, 상위권 대학의 경쟁은 오히려 심화되는 양극화가 관찰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전체 정원’이 아니라 ‘상위 정원’이다.

이 지점에서 대입 제도 개편은 ‘평균적 완화’가 아니라 ‘상위권 분배 규칙’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지역균형, 고교추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등 공공성 요소의 재배치가 정교하게 병행돼야 한다.

7. 수능의 현재 과제: 난이도·신뢰·형식의 한계

최근 수능 영어 난이도 조절 실패 논란과 문항 오류 의혹은 시험 신뢰를 흔들었다. 절대평가인 영어에서 1등급 비율이 지나치게 낮게 나온 해석 불가능한 결과는, 학생·학부모·교사 모두에게 혼선을 줬다.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은 선발 시험의 기본 자산이라는 점에서 뼈아픈 대목이다.

또한 선택지형 평가 중심의 한계가 누적돼 왔다. 사고 과정의 질, 설명력, 맥락 이해를 포착하는 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고, AI 시대의 학습 목표와도 거리가 있다. 이는 서·논술형 도입 논의를 자극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8. 대안 시나리오: 절대평가, 서·논술형, 자격고사, 이원화

절대평가의 조건

절대평가는 ‘기준 명확성’과 ‘채점 안정성’이 전제돼야 한다. 등급컷의 변동성을 줄이고, 교과별 성취기준을 공개적으로 세분화해 학습자와 교사가 같은 방향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등급 동점자 처리 기준과 대학별 추가 평가의 범위를 사전에 명료화해야 예측 가능성이 생긴다.

서·논술형 확대의 안전장치

출제·채점 표준과 채점자 훈련, 이의 절차의 투명화가 중요하다. 루브릭 공개, 샘플 답안과 해설의 데이터베이스화, 반복 출제 가능 영역의 로테이션 관리 같은 ‘시험 거버넌스’를 제도화해야 한다. 비용 통제를 위해서는 공통 과제은행과 공동채점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자격고사화와 공통기준

수능을 ‘최소 학업역량’ 인증 시험으로 전환하는 시나리오는 학교 수업 정상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대학별 심층평가가 뒤따를 경우, 자격고사만으로는 사교육 억제가 어렵다. 자격기준과 대학별 추가평가 사이의 역할 분담을 제도적으로 고정해야 한다.

이원화(수시형/정시형) 수능

일부 제안처럼 여름과 가을에 성격을 달리한 수능을 분리 운영하면, 재도전 기회가 늘고 특정 시험의 우발 변수를 분산할 수 있다. 다만 시험 관리 비용과 수험생 부담, 학교 교육과정과의 충돌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

9. 학부모·학생이 지금 준비할 것

제도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축이 있다. 기초 학업역량(읽기·쓰기·수리·과학적 사고), 자료 해석력, 자신의 학습 과정을 설명하는 메타인지가 그것이다. 서·논술형이 확대될수록 ‘정답’보다 ‘근거’가 중요해진다. 평소 교과서·실험·프로젝트에서 근거를 기록하고, 스스로의 판단을 문장으로 정리하는 훈련이 장기적으로 가장 안전하다.

학교 선택과 비교과를 바라보는 시선도 점검해야 한다. 화려한 활동 나열은 성장 이력을 대변하지 않는다. 성취 기준과 연결된 학습의 깊이, 과정의 일관성, 반성적 기록이 더 높은 신뢰를 만든다. 무엇보다 ‘학교 수업의 충실한 참여’가 모든 전형의 바탕임을 잊지 말자.

10. 정책 설계 체크리스트: ‘공정성’의 재정의

  • 예측 가능성: 등급 기준, 전형 요소, 가중치의 중도 변경 최소화
  • 비용 통제: 면접·논술 등 고비용 평가의 표준화와 공공 인프라 구축
  • 학교 간 격차 보완: 교사 연수, 강좌 개설 지원, 평가 인력 예산의 구조적 배분
  • 검증 가능성: 채점 기준·데이터 공개, 이의신청 절차의 독립성 강화
  • 지역 균형: 상위권 대학 정원의 사회적 책무와 연계한 선발 비율 관리
  • 디지털 신뢰장치: 포트폴리오 위·변조 방지, 활동 인증의 표준 플랫폼

핵심은 ‘누구에게 어떤 기회를, 어떤 방식으로 공정하게 나눌 것인가’다. 시험의 존재 여부보다 설계의 품질이 결과를 좌우한다.

11. 해외사례에서 얻는 시사점

미·영의 상위대학은 내신·서류·면접 비중이 크지만, 동시에 공공 표준시험(SAT/ACT, A-level 등)을 일정 부분 참고한다. 표준시험을 완전히 없애기보다, 역할을 재조정하며 다원적 증거를 결합하는 흐름이 일반적이다. 또한 평가 비용과 정보 비대칭을 줄이기 위해 공공 가이드라인과 모형 답안, 채점 루브릭 공개가 널리 활용된다.

이들 사례가 말해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평가가 다층화될수록 투명성과 표준화 장치도 함께 강화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변별’이 사회적 신뢰를 갉아먹는다.

12. 결론: 폐지 논쟁 너머, 설계의 품질이 승부를 가른다

‘2040 수능 폐지’는 하나의 방향 제시다. 그렇지만 시험을 없앤다고 경쟁이 사라지지 않는다. 경쟁의 근원은 희소성에 있다. 결국 관건은 상위권 대학의 선발 규칙을 어떤 공정성 원리로 설계하느냐다. 절대평가, 서·논술형, 성장 이력 평가가 모두 가능하지만, 비용과 격차, 예측 가능성에 대한 견고한 장치가 함께 세워져야 한다.

정리하면,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의 찬반보다 ‘실행 가능한 보완 패키지’다. 공공 표준과 데이터 공개, 학교 지원 인프라, 디지털 신뢰 기술, 지역균형의 재배치까지. 폐지냐 유지냐의 이분법을 넘어, 학생의 성장을 중심에 두되 사회적 신뢰를 설계하는 일이 다음 10년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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