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치금 6.5억” 100여일 사이 무슨 일이? 대통령 연봉 2.5배가 모인 구조의 빈틈
구치소 수용자 계좌로 짧은 기간 큰돈이 드나든 사례가 확인됐다. 영치금은 본래 생필품·서신 교환 등 편의를 위한 제도지만, 입·출금 한도와 횟수 제한의 부재가 논란을 키우고 있다.
무엇이 이슈인가
서울 구치소에 수감된 전직 대통령 계좌로 약 100여일 동안 6억5천여만원 수준의 영치금이 몰렸다. 입금 건수는 하루 평균 세 자릿수에 달했고, 다수 차례 출금도 이뤄졌다. 같은 기간 배우자와 다른 수용자들의 계좌에도 적지 않은 금액이 드나든 것으로 파악되며, ‘영치금이 사실상 기부·후원 성격의 통로로 기능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고개를 든다.
핵심은 제도 설계의 빈틈이다. 보유 잔액 상한은 있지만 전체 입·출금 총액 한도나 횟수 제한이 없다. 잔액만 기준선(예: 400만원) 아래로 맞추면 반복적 입금과 순환 출금이 가능해진다. 제도의 취지가 수용자 편의에 있었던 만큼, 과도한 규제는 경계해야 하지만 현 수준은 ‘사실상 무제한’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치금 제도 A to Z
영치금은 무엇을 위한 돈인가
영치금은 교정시설 수용자가 매점에서 생필품을 구입하거나, 전화·서신 비용 등을 결제하는 데 쓰는 보관금이다. 가족·지인·지지자 등 외부인이 입금할 수 있고, 수용자는 승인을 거쳐 시설 내에서 사용하거나 일정 요건하에 계좌 이체 등 출금이 가능하다.
현재 운영 방식의 핵심 규칙
- 잔액 한도: 시설 내 보유 잔액에 상한이 설정되어 있어 기준을 넘기면 출소 시 정산하거나 별도 절차로 외부 계좌 이체가 가능하다.
- 입·출금 절차: 입금은 외부에서, 출금은 시설 규정에 따라 신청·승인 과정을 거친다.
- 용도: 생필품, 위생·의료 관련 소모품, 교통·우편·통신 등 편의 비용.
6.5억이 가능했던 이유
잔액 기준만 있는 설계
잔액이 일정액을 넘지 않도록만 관리되면, 입·출금의 총량은 큰 제약 없이 순환할 수 있다. 반복 입금으로 잔고를 채우고, 허용 범위 내에서 외부 계좌로 이체 혹은 시설 내 지출을 거듭하면 ‘큰돈’도 장기간에 걸쳐 이동한다.
입금 주체의 분산 효과
다수의 입금자가 소액씩 반복적으로 보내는 구조에서는 개별 거래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누적 총액은 빠르게 커진다. 소액 다건은 반감 효과를 만들어 모금의 ‘가시성’을 낮추고, 규제 레이더를 비켜갈 가능성을 키운다.
출금의 다단화
시설 내 사용과 외부 이체가 혼재하면 자금 흐름 파악이 복잡해진다. 잔액 한도를 넘기지 않는 선에서 출금이 자주 이루어질수록 ‘총액 감시’는 더 어려워진다.
기부·정치자금과 무엇이 다른가
공식 모금과 영치금의 구조적 차이
- 한도와 신고의무: 기부금은 일정 금액 이상에서 관할청 신고·공개 의무가 있고, 정치자금은 개인별 후원 한도와 수입·지출 공개 규율이 촘촘하다.
- 거래 투명성: 정치자금 계좌는 감사·회계보고 체계가 정착되어 있다. 반면 영치금은 ‘보관금’ 성격상 공시가 제한적이다.
- 목적의 특정성: 기부·후원은 공익·정치활동 등 목적이 명확하지만, 영치금은 수용자 편의라는 포괄적 목적에 머문다.
이 차이 때문에 영치금이 ‘우회 모금’처럼 기능할 소지가 제기된다. 제도의 본래 취지와 달리, 특정 인물에 대한 결속을 과시하는 창구로 쓰이면 사실상 기부·후원과 유사한 결과가 나타난다.
과세 사각지대는 왜 생기나
영치금은 원칙적으로 과세 대상에 포함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과세 당국이 교정시설 내부 거래 자료를 충분히 수집·연계하기 어렵다면 현실 과세가 지연되거나 누락될 위험이 있다.
데이터 연계의 허점
- 기관 간 정보교환: 교정기관과 과세 당국의 데이터 인터페이스가 제한적이면, 입·출금 원천과 최종 귀속을 파악하기 어렵다.
- 거래 단위의 미세화: 다건 소액 거래가 누적되는 구조에서는 패턴 인식이 쉽지 않다.
- 익명성의 착시: 명의는 존재하지만, 다수 입금자가 단기간 교차 입금할 때 실질 귀속과 목적 파악은 사실상 별도의 정교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영치금 자료 열람·요청권’을 명확히 하는 법 개정 논의가 나온다. 자료 접근권이 있어야 과세·감사 체계가 작동하고, 사후 검증 역시 가능해진다.
해외는 어떻게 막나
교정시설의 자금 흐름 관리는 각국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다음의 장치를 둔다.
- 거래 상한 및 빈도 제한: 특정 기간 내 입금 총액·횟수·단가 캡(cap)을 설정해 ‘쪼개기’ 효과를 줄인다.
- 출금 사유 구체화: 외부 계좌 이체는 범주를 좁히고, 증빙·승인 단계(예: 영수증 첨부, 사후 점검)를 강화한다.
- 데이터 공개의 최소 표준: 개인 식별은 보호하되, 기간별 총액·거래 유형 등 비식별 통계를 공개해 외부 감시를 유도한다.
- KYC/AML 적용: 일정 기준금액을 넘는 반복 거래에 대해 간소화된 고객확인 및 자금세탁 방지 절차를 연동한다.
핵심은 ‘편의 훼손 없이 투명성 제고’다. 수용자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과도한 자금이 빠르게 회전하지 않도록 ‘속도 조절 장치’를 거는 방식이다.
개선 아이디어와 체크리스트
입·출금 체계 손보기
- 총액 상한 신설: 분기·반기 단위로 입금 총액 상한을 두고, 초과 시 자동 보류·심사.
- 횟수 제한: 주간·월간 횟수 캡을 설정해 ‘쪼개기’의 유인을 낮춘다.
- 출금 목적 코드화: 외부 이체는 용도코드 선택+간단 증빙으로 표준화하고, 코드별 통계는 비식별 형태로 공개.
투명성·감사 강화
- 비식별 대시보드: 교정시설·전체 국가 단위로 기간별 총입출금, 평균·상위 백분위, 반복입금자 비중을 공개.
- 알고리즘 경보: 일정 기간 내 급격한 증가, 동일 명의군의 집단 입금, 시간대 집중 등 이상 징후 자동 알림.
- 기관 간 데이터 연계: 교정기관–과세당국 간 안전한 API를 통해 특정 기준 초과 거래를 자동 통지.
권리 보호 장치
- 생필품 최소선 보장: 상한·제한이 생겨도 기본 생필품 구매 가능 한도는 별도 보호.
- 이의제기 채널: 정지·보류 시 신속 이의신청 절차를 마련해 오남용을 막는다.
- 정보 접근권: 본인과 법정대리인이 자신의 영치금 흐름을 손쉽게 열람하도록 앱·우편 통지를 병행.
남은 쟁점들
표현의 자유·정치적 지지와의 경계
수용자에게 성원을 표시하는 행위 자체는 표현의 자유 영역과 겹친다. 따라서 무차별 규제는 부작용이 크다. 목표는 ‘금액과 빈도의 과도함’을 다루는 것이지, 지지 표현을 원천 차단하는 데 두면 안 된다.
사적 재산권과 공익의 균형
영치금은 개인의 재산권과도 연결된다. 다만 공익·투명성 필요가 높아지는 지점에서는 최소침해 원칙과 명확한 법적 근거를 갖춘 제한이 불가피하다. 과도한 자의적 판단을 막는 명확한 기준 제시가 핵심이다.
정치적 악용 우려
제도 개선이 특정 사건을 겨냥한 ‘표적 규제’로 비쳐서는 안 된다. 보편적 규칙과 단계적 적용, 공청회·영향평가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확보해야 제도의 수명도 길다.
정리하며
짧은 기간 거액의 영치금이 모인 사건은 제도 본래 취지와 현행 운영의 간극을 드러냈다. 잔액 기준만으로는 ‘총량 통제’가 작동하지 않는다. 총액·횟수·용도·정보공개 등 네 갈래의 장치를 균형 있게 도입하고, 데이터 연계와 권리 보호를 병행해야 한다.
영치금은 수용자의 최소한의 일상을 지탱하는 장치다. 그 본령을 지키면서도,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정교한 손질이 지금 필요하다. 제도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결국 수용자와 사회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