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또 염전노동 파문 끊지 못한 37년의 공백 무엇이 사람을 섬에 묶었나
지적장애인이 수십 년간 섬 염전에서 일하며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행정과 수사는 움직였다고 하지만, 분리와 보호는 왜 번번이 실패했을까. 사건의 타임라인부터 제도적 구멍, 지역의 과제까지 꼼꼼히 정리했다.
사건 한눈에 보기
전남 신안의 한 염전을 중심으로 강제노동 및 임금체불 의혹이 다시 확인됐다. 지적장애인으로 알려진 피해자는 오랜 기간 염전에서 일했고, 2019년부터 4년 넘게 임금 수천만 원을 지급받지 못한 정황이 드러났다. 노동당국은 근로기준법 위반을 확인해 벌금형 집행유예 판결까지 이끌어냈고, 경찰 수사도 병행됐다.
하지만 핵심은 처벌의 유무가 아니다. 왜 분리 조치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했는지, 피해자 의사 존중이라는 원칙이 실무 현장에서 어떻게 벽이 되었는지, 그리고 2014년 대대적 단속 이후에도 ‘재발’을 막지 못한 구조적 맹점이 무엇인지다.
- 피해자: 지적장애를 가진 60대, 수십 년간 섬 염전에서 노동
- 쟁점: 임금 미지급, 분리·보호 실패, 반복되는 재발
- 조치: 노동당국 송치 및 법원 판결, 경찰 수사 진행
‘37년’의 행간 실종과 재발견
이 사건이 특히 사회를 흔든 이유는 ‘시간’이다. 20대 후반에 실종된 한 사람이 중년이 되어 섬에서 발견되었다. 가족은 그를 찾을 수 없었다고 기억한다. 뒤늦게 요양병원의 후견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의 존재가 다시 표면으로 올라왔다. 염전 폐업과 병원 입원, 그리고 가족의 재회까지, 모든 단계가 뒤늦었다.
세월의 흔적은 신체 곳곳에 남는다. 발톱과 치아가 온전치 못한 모습, 장기간 노동 환경을 짐작하게 하는 단서들이 겹친다. ‘노예’라는 자극적 단어를 굳이 쓰지 않더라도, 그가 겪어온 시간이 어떤 환경에 놓여 있었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하나다. 실종과 발견 사이, 수차례 공권력이 닿았던 시점마다 왜 결과가 달라지지 못했는가. 이 질문이 곧 재발 방지의 출발점이다.
분리 실패의 이유 피해자 의사와 법의 간극
행정과 경찰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강제 분리의 법적 근거가 부족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국내 현행 제도는 성인의 자기결정권을 폭넓게 인정한다. 문제는 ‘자기결정’이 장애와 장기간 종속적 관계가 결합한 환경에서 얼마나 온전히 작동하는가다.
현장에선 이런 장면이 반복된다
“갈 곳이 없다”고 말하는 피해자, “잘 지내고 있다”고 진술하는 당사자, 그리고 보호시설 이송 동의를 받지 못한 담당자.
이 간극을 줄이려면 두 축이 필요하다. 첫째, 판단능력 평가에 근거한 ‘잠정적 보호’의 정교화. 둘째, 분리 직후에도 생활을 지탱할 수 있는 주거·소득·의료의 패키지 제공이다.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질문이 해결되지 않으면, 많은 피해자가 다시 원래의 공간으로 돌아가려 하거나, 남겠다고 말한다.
임금체불과 형사처분 무엇이 바뀌었나
노동당국은 수년간의 미지급 임금을 적발하고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법원 판결은 벌금과 집행유예였다. 형사적으로는 의미가 있지만, 피해 회복의 관점에선 여전히 짧다. 임금채권 실현과 손해배상, 치료·회복 지원이 뒤따라야 사건이 ‘끝’난다.
피해 회복의 현실적인 난관
- 가해자 재산 추적과 압류의 실효성 부족
- 장기간의 체불 임금 입증과 계산의 어려움
- 치료·거주·생계 지원이 법적 절차와 따로 노는 문제
형사판결은 상징적 이정표에 가깝다. 실질 회복은 민사·행정·복지의 조합으로만 가능하다.
2014년 이후에도 왜 반복됐을까
신안 염전 문제는 2014년을 기점으로 전국적 주목을 받았고, 대대적인 단속이 진행됐다. 이후 일자리 구조를 개선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럼에도 ‘반복’이란 단어가 사라지지 않았다.
반복을 만드는 구조
- 고립된 섬과 계절형 노동의 특성: 외부 감시의 밀도가 낮음
- 현금·현물 혼합 관행: 임금 체불·갈취와 착취가 뒤섞이기 쉬움
- 취약계층 고용 의존: 문서화·계약 문화의 빈약함
- 지역사회 ‘관행’에 대한 암묵적 용인: 신고·분리의 문턱 상승
특히 ‘분리 실패’의 경험은 다음 사건에도 영향을 미친다. “분리하려 해도 당사자가 거부한다”는 기억이 현장의 적극성을 떨어뜨리고, 그 사이 새 피해가 생긴다.
섬 노동의 구조 취약성
염전은 계절과 날씨에 크게 좌우되는 산업이다. 바람, 일조량, 강수량은 수확량과 노동시간을 좌우한다. 바쁘면 하루가 금세 밤이 되고, 비어 있는 시간에는 잡일이 늘어난다. 그 틈새에 ‘주거 제공’과 ‘생활비 대납’이 들어오면, 노동과 생활이 얽혀 탈출구가 사라진다.
생활이 곧 임금이 되는 순간
숙식 제공, 통장 관리, 교통 의존. 이 세 가지가 결합하면 노동자는 고용주와의 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도시 노동에서는 계약서가 기준을 잡아주지만, 섬에서는 구두 약속과 관행이 관계를 만든다. 그리고 그 관행은 법의 테두리 밖에서 적잖은 권력을 갖는다.
따라서 섬 노동을 개선하려면 ‘계약’과 ‘이동성’이 핵심이다. 표준근로계약서의 전면 적용, 통장 개인 소유 원칙, 셔틀·선박 비용 지원 같은 이동성 보강이 최소한의 안전망이 된다.
현장에서 필요한 실무 해법
1) 초동 대응 체크포인트
- 신고 접수 즉시 합동 진입: 노동·경찰·복지 동시
- 별도 공간에서의 진술 확보: 고용주와 시야·청각 분리
- 임시 숙소 72시간 제공: 호텔·게스트하우스·지자체 긴급주거
- 금융 접근 회복: 휴대폰·신분증·통장 소유 여부 즉시 확인
2) ‘의사 거부’ 상황의 합리적 접근
- 판단능력 간이평가 도입: 표준화된 스크리닝으로 잠정 보호 여부 결정
- 동행 구조 제시: 보호자·공익변호사·동료지원가가 함께 이동
- 대안 패키지 설명: 주거+급여 선지급+치료 예약을 확정해 선택지를 가시화
3) 사업장 관리 강화
- 표준근로계약 의무 제출 및 계절별 점검
- CCTV의 오남용 방지와 출입 기록 전자화
- 외부 신고 핫라인 표준 게시판 비치
핵심은 절차를 ‘사람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일이다. 구호가 아니라 동선이 바뀌어야 현장이 바뀐다.
지역사회와 소비의 역할
섬 경제는 외부 소비자와 연결돼 있다. 천일염 한 포대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우리는 생산의 조건을 함께 선택한다. 지역사회는 더 많은 감시를, 소비자는 더 많은 투명성을 요구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행동
- 지역 단위 상설 감시단: 주민·상인·종교계·청년단체가 참여
- 윤리 생산 라벨: 표준근로·임금지급·주거분리 준수 확인
- 계절노동자 숙소 매핑: 민박·공실을 공공 플랫폼으로 연계
이런 변화는 시간을 요구한다. 하지만 ‘한 번의 사건’으로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조용한 평시의 관리가 진짜 성과를 만든다.
체크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한 최소 기준
- 임금 지급: 월 1회 이상 계좌이체, 통장·카드 개인 소유
- 노동시간: 일일·주간 상한 기록 및 게시
- 주거 분리: 고용주 주택과 작업장과의 물리적 분리, 열쇠 개인 소지
- 의료 접근: 분기 1회 건강검진, 상해 발생 즉시 외부 병원 연계
- 신고 경로: 무기명·외부 직접 연결 라인 상시 운영
- 점검 주기: 성수기 전·중·후 최소 3회 현장 점검
이 기준은 과하지 않다. 기본을 지키면 재발의 문턱은 확연히 높아진다.
마무리 여전히 남은 질문들
분명히 움직임은 있었다. 조사도 있었고, 송치도 있었고, 판결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은 왜 섬에 남았을까. ‘의사 존중’과 ‘보호 필요’ 사이에서 한쪽이 늘 패배했다. 그 사이에 있던 건 주거, 생계, 돌봄 같은 아주 현실적인 문제였다.
이제 필요한 건 더 큰 구호가 아니라, 더 촘촘한 실무다. 초동 72시간, 임시 주거, 금융 회복, 동행 지원. 이 네 가지가 갖춰지면, 다음 사건의 타이틀은 달라질 수 있다. 긴 시간 묶여 있던 고리를 끊어내는 방법은 결국 사람이 사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데 있다.
섬은 멀리 있어 보이지만, 우리가 먹는 한 줌의 소금으로 매일 연결돼 있다. 연결돼 있다면, 바꿀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