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욕하면 징역 5년?” 표현의 자유와 혐오 규제 사이, 어디까지가 선인가
특정 국가나 그 국민을 모욕·명예훼손할 경우 최대 징역 5년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되며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반의사불벌·친고 배제라는 강한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할지, 우리 일상의 말하기와 비판 문화에 어떤 파장을 남길지 차분히 정리했습니다.
이슈 한눈에: 무엇이 달라지나
이번 논의의 출발점은 특정 국가 혹은 그 국민 전체를 향한 허위사실 적시나 모욕적 표현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명시하려는 움직임입니다. 특히 기존 명예훼손·모욕죄가 원칙적으로 피해자 의사를 존중해왔던 것과 달리, 반의사불벌과 친고 요구를 배제해 수사기관이 피해자 고소 없이도 수사·기소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가 핵심입니다.
단순히 “나쁜 말은 하지 말자” 수준의 캠페인이 아니라, 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질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와 혐오 규제의 경계가 예민하게 흔들립니다. 같은 말이라도 맥락과 대상, 공익성 판단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기준의 명확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집니다.
법안 핵심 조항 정리
1) 특정 국가·국민까지 보호범위를 확장
기존에는 개인이나 집단 중에서도 비교적 특정 가능한 대상에 대한 명예훼손·모욕이 주된 쟁점이었습니다. 개정안은 보호범위를 “국가”와 “그 국민 전체”까지 넓히려 합니다. 이때 전체 국민은 개별 피해자의 특정이 어렵다는 점에서 적용 기준의 정교함이 필수입니다.
2) 형벌 수준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혹은 모욕적 표현에 대해 “5년 이하 징역, 10년 이하 자격정지, 1,000만 원 이하 벌금”이 언급됩니다. 형량 자체도 논쟁적이지만, 무엇보다 “수사 개시의 문턱”이 낮아지는 점이 더 큰 파장으로 읽힙니다.
3) 반의사불벌·친고 배제
피해자(여기서는 특정 국가나 국민 전체)의 고소가 없어도 수사가 가능합니다. 또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시가 있어도 제동이 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요컨대 “국가의 직접 개입”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셈입니다.
논란의 불씨: 왜 ‘반중 집회’가 예시였나
법안 제안 과정에서 반중 성격의 집회 사례가 주된 근거로 제시된 점이 파장을 키웠습니다. 다수의 국가·이슈가 존재함에도 특정 사례만 부각될 경우, 제도 설계의 중립성과 형평성이 의심받기 쉽습니다. 규범은 보편적으로 작동해야 하고, 표적 규제로 읽히는 순간 사회적 신뢰가 흔들립니다.
정치적 맥락을 오해받지 않으려면, 입법 취지서부터 적용 범위·요건을 다층적으로 제시하고, 특정 국가나 이슈에 국한하지 않는 일반원칙을 앞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이 미흡하면 “정권·정치상황에 따라 표현을 선별적으로 누르는 도구”라는 비판에 취약해집니다.
표현 규제의 정당성은 “누가 대상이냐”보다 “기준이 얼마나 명확하고 일관되게 적용되느냐”에서 판가름납니다.
표현의 자유 쟁점: 위축효과와 자의적 해석
1) 비판과 모욕의 경계
국가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지탱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그러나 정책 비판과 국민 전체를 향한 인신공격적 비하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선을 어디에 긋느냐입니다. 기준이 모호하면 합리적 비판조차 자칫 위험 부담을 안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기검열이 강화됩니다.
2) 맥락 판단의 어려움
집회, 풍자, 보도, 해설, 댓글 등 표현의 그릇이 다양해졌습니다. 동일한 문장도 풍자극의 대사일 때와 선동적 현수막 문구일 때 사회적 파장이 다릅니다. 법적 판단이 맥락을 얼마나 잘 반영할 수 있느냐가 핵심인데, 수사·재판 단계에서 맥락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절차적 장치가 보완되지 않으면 오판 가능성이 생깁니다.
3) 위축효과의 현실성
‘조사받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온라인·오프라인 발언이 줄어드는 것은 흔한 현상입니다. 특히 공익적 문제 제기, 비판적 칼럼, 풍자 콘텐츠가 먼저 사라집니다. 결과적으로 공론장엔 과도한 중립만 남고, 정책의 문제점을 짚는 목소리가 얇아지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해외 규제와의 비교: 혐오표현은 어떻게 다루나
유럽 일부 국가는 인종·민족·출신국가 등을 이유로 타인을 모욕하거나 차별을 선동하는 행위를 형사처벌합니다. 다만 그 적용은 대체로 ‘증오 선동(hate incitement)’처럼 구체적 요건을 갖춘 경우에 방점을 찍습니다. 단순한 불쾌감 유발보다 사회적 약자나 특정 집단에 대한 폭력·차별을 조장하는 위험을 중시합니다.
또한 표현 제한은 보통 명확성 원칙과 비례원칙을 충족하도록 설계됩니다. 예컨대 처벌 요건을 좁히고, 공익적 토론과 학술·언론의 영역에 대한 예외·면책 조항을 두어 과도한 위축을 피하려고 합니다. 제도는 ‘혐오 감정의 금지’가 아니라, ‘폭력과 차별의 촉발 방지’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 공감대를 얻습니다.
일상 사례로 보는 적용 가능성
사례 A: 거리 집회에서의 구호
특정 국가 전체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구호가 반복될 경우, 모욕적 성격이 짙게 평가될 여지가 큽니다. 다만 집회의 성격이 정책 비판 중심인지, 특정 국민을 향한 비하인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집회 주최 측은 구호와 피켓 문구를 사전에 점검하는 내부 가이드가 필요합니다.
사례 B: 온라인 댓글과 짤방
댓글·이미지 짤은 맥락이 축약되어 오해가 잦습니다. 국가 비판을 가장한 국민 전체에 대한 멸칭 사용은 위험합니다. 반면 통계·자료에 근거한 정책 비판, 외교 현안의 평가, 언론 보도를 인용한 토론은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문장 하나로 맥락이 충분히 전달되기 어렵기 때문에 링크와 근거 제시가 중요합니다.
사례 C: 칼럼·리뷰·콘텐츠 기획
풍자와 비판의 경계를 설계할 때는 “정책, 제도, 권력 행위”를 겨냥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편이 안전합니다. 국민 전체를 향한 멸칭이나 열등성 일반화는 지양하고, 사실 검증과 출처 교차 확인을 습관화하면 분쟁 가능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균형점을 찾는 원칙: 명확성·비례성·절차적 안전장치
1) 명확성
법 문언은 누구나 이해할 만큼 명확해야 합니다. ‘모욕’의 범주, ‘국가·국민’ 대상 표현의 적용 요건, ‘허위사실’의 판단 기준, 풍자·보도·학술 영역의 예외 여부 등을 구체화해야 합니다. 모호하면 결국 수사기관의 재량이 넓어지고, 그만큼 표현의 자유는 위축됩니다.
2) 비례성
처벌 수위는 실제 사회적 해악과 비례해야 합니다. 물리적 폭력이나 현저한 차별 선동과 같이 실질적 피해가 예상되는 표현에 우선 대응하고, 단순 모욕적 표현은 교육·플랫폼 조치·민사구제 등 단계적 수단을 병행하는 것이 균형잡힌 접근입니다.
3) 절차적 안전장치
고소 없이 개시되는 수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전심사위원회’나 ‘독립적 검토 장치’가 도움이 됩니다. 공익적 비판과 혐오 선동을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을 공개하고, 수사 단계에서 맥락·의도·파급력 평가를 의무화하면 자의적 해석을 줄일 수 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언론 환경의 파급효과
커뮤니티 운영자와 플랫폼은 내부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정교화해야 합니다. 멸칭 필터, 반복 도배 차단, 신고 절차의 투명성 강화 같은 자율규제가 실제로 분쟁을 줄입니다. 언론 역시 ‘선정적 제목—감정적 문장—단정적 결론’의 3단 콤보를 경계하고, 근거 구조를 앞세워야 합니다.
알고리즘의 노출 구조도 중요합니다. 자극적 표현은 클릭을 부르지만, 사회적 비용을 가중합니다. 플랫폼이 ‘공익성 가점’과 ‘혐오 감점’ 같은 신호를 설계하면, 법적 처벌 이전에 자정 효과가 생깁니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혐오의 확산을 억제하는 비교적 부드러운 방법입니다.
우리가 지금 확인해야 할 것들(체크리스트)
- 정책·정권 비판과 국민 비하를 구분하는가? 문장에 대상이 정확히 적시되는가?
- 사실 검증을 거쳤는가? 출처가 복수이고 상호 검증 가능한가?
- 풍자·보도·학술 목적일 때, 표현 과잉을 피할 장치를 마련했는가?
- 댓글·짤 등 맥락 축약형 표현에서 오해 소지를 줄였는가?
- 커뮤니티·플랫폼 운영 가이드와 내부 신고 체계가 작동하는가?
- 법 적용이 필요한 경우라도 단계적·비례적 수단을 우선 검토하는가?
맺음말: 혐오를 줄이되, 비판은 남겨야 한다
혐오 표현을 줄이자는 요구는 정당합니다. 다만 민주사회에서 비판은 반드시 남아 있어야 합니다. 제도의 방향이 옳더라도, 설계가 서툴면 일상의 말하기가 얼어붙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표현의 힘을 믿되, 혐오의 상처를 줄이는 방법’을 찾는 일입니다. 기준은 명확하게, 절차는 투명하게, 처벌은 비례적으로—이 세 가지 원칙이 갖춰질 때, 우리는 혐오도 줄이고 자유도 지킬 수 있습니다.
감정보다 원칙이 앞설 때, 공론장은 더 단단해집니다. 차분한 논의가 이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