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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3주기, ‘기억과 안전’으로 답하다…10시29분 사이렌과 보랏빛 추모의 약속

2025년 10월 29일 · 85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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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곳곳이 보랏빛 추모로 물든 3주기. 유가족과 시민, 국내외 추모객이 함께 참사의 진실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기억은 애도에 머물지 않고, 안전을 바꾸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태원 참사3주기기억과 안전

보랏빛으로 물든 도심, 3주기의 시작

올해 3주기를 앞두고 서울 곳곳에는 보랏빛 리본과 추모 문구가 조용히 걸렸습니다. 이태원 일대뿐 아니라 광화문 북광장, 서울광장, 녹사평역 주변까지, 참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시민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한 방향을 향했습니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는 10월을 ‘기억과 애도의 달’로 선언했고, 그 선언은 전시와 간담회, 추모 프로그램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에는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한 작품들이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벽면에 걸린 빌보드와 설치물은 단순한 전시를 넘어, 일상 속에서 멈춰 서게 만드는 표식이 됐습니다. 매번 지나치던 길에서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이름을 읽고, 잠시 멈춰 섭니다. 그 멈춤이 바로 기억의 시작이었습니다.

올해는 해외에서 온 유가족들이 함께 걸었습니다. 다른 언어로 써 내려간 조문 카드, 오래 접힌 사진, 손에 꼭 쥔 작은 꽃다발은 국경을 넘어선 애도의 공통된 모습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주는 울림은 컸습니다. 참사는 한 도시의 사건을 넘어, 안전의 언어를 공유해야 할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되었음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오전 10시29분, 1분의 침묵이 남긴 것

기억식은 참사일을 상징하는 시간, 오전 10시 29분에 맞춰 시작됐습니다. 서울 전역에 1분간 울린 추모 사이렌은 분주한 도시의 시간을 잠시 멈춰 세웠습니다. 사이렌이 멎은 뒤 찾아온 침묵은 그 어떤 말보다 또렷했습니다. 이 침묵은 잊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이자, 안전을 위해 무엇을 바꿀 것인지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시간의 의미는 단지 의례가 아닙니다. 반복되는 의식이 공동체의 기억을 단단하게 붙잡아두는 장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매년 같은 시각, 우리는 같은 질문을 꺼내 듭니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리고 무엇을 더 바꿔야 하는가.

국내외 유가족이 함께 만든 ‘기억식’의 의미

광화문 북광장에 마련된 기억식에는 국내외 유족 약 3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해외에서 온 유가족들은 참사 현장을 찾아 헌화하고, 간담회와 조사 참여 등 빽빽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타지에서 온 이들이 한국어로 적힌 이름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일 때, ‘함께 기억한다’는 말의 무게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추모 발언은 담담했습니다. 유족 대표, 국회의장, 특조위 관계자, 외국인 유가족, 예술인 등이 순서대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장황한 수사는 없었습니다. 대신 정확한 단어가 중심이었습니다. 진실, 책임, 안전, 그리고 존엄. 이 네 단어가 발언의 공통분모였습니다.

“기억은 단지 과거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현재의 행동입니다.” 많은 이들이 비슷한 뜻을 남겼습니다. 말들은 차분했지만, 그 안의 의지는 단단했습니다.

낭독회와 호명식, 이름을 부르는 애도의 방식

저녁이 되자 녹사평역 광장에서는 추모 메시지 낭독회가 열렸습니다. 유가족의 편지, 생존자의 단상, 시민이 남긴 짧은 문장들이 한 줄로 이어졌습니다. 마이크에 닿는 목소리의 떨림,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공백조차도 모두 기록이자 증언이었습니다.

서울광장에서는 모든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는 호명식이 진행됐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소리 내어 불러야 존재가 현재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름을 들으며 한 사람의 일상과 미래를 함께 상상합니다. 그 상상은 곧 책임의 감각으로 이어집니다. 어떤 제도도, 어떤 숫자도 이름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책임과 징계, 남겨진 질문들

정부의 합동 감사 결과 발표는 참사 대응 과정에서의 책임을 폭넓게 확인하려는 시도로 읽혔습니다. 다만 실제 징계는 일부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국가와 지자체, 여러 기관이 얽힌 복합 재난에서 책임의 층위를 촘촘하게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멈출 수는 없습니다. 책임이 분명해야 재발 방지의 설계가 정확해지기 때문입니다.

징계의 경중을 두고 다양한 시선이 존재합니다. 어떤 이는 ‘부적절한 대응의 인과가 명확히 입증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지휘 체계 전반의 구조적 책임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서로 다른 주장 사이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책임 규명이 곧 안전 기준의 재설계라는 점입니다. 책임은 처벌의 끝이 아니라, 제도를 움직이는 출발점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사건-대응-사후조치의 전 과정을 문서와 데이터로 정밀하게 복원하는 일입니다. 보고 체계의 실제 흐름, 현장 지휘의 권한과 한계, 정보 공유의 시간차, 인력과 자원의 배분 기준까지,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남겨야 다음 결정을 바꿀 수 있습니다.

2차 가해를 멈추기 위해 우리가 할 일

애도는 조용하지만, 결코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이어진 조롱과 왜곡, 편견은 유가족과 생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깁니다. 이는 표현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한 공동체를 위한 기본 규범의 문제입니다. 피해자다움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태도는 애도를 가로막고, 진실을 흐립니다.

유가족과 생존자를 향한 혐오 표현, 개인정보 노출, 왜곡된 루머 유포는 명백한 2차 가해입니다. 시민 각자의 언어 습관과 공유 행태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개인의 실천 체크리스트

  • 확인되지 않은 정보는 공유하지 않습니다.
  •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평가·비난을 자제합니다.
  • 공식 조사와 판결, 검증된 보고서를 중심으로 사실을 확인합니다.
  • 추모 공간에서는 사진·영상 촬영 전에 동의를 구합니다.
  • 추모 발언과 기록을 인용할 때 문맥을 유지합니다.

제도로 완성하는 안전: 재발 방지의 조건

‘다시는’이라는 약속이 공허해지지 않으려면 제도와 현장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군중 밀집이 예고되는 행사에 대해 선제적으로 위험도를 산정하고, 관할 기관과 경찰·소방·의료가 공조하는 모델이 상시화되어야 합니다. 한 번의 지시가 아니라, 반복 가능한 표준이어야 합니다.

현장 중심의 개선 과제

  • 군중 밀집 예측: 휴대전화 위치 데이터, 교통량, SNS 이벤트 신호를 결합한 실시간 밀도 지도 운영
  • 골든타임 지휘체계: 현장 총괄(IC) 지정과 권한 위임을 법제화, 다중기관 공조 훈련 정례화
  • 피난 동선 설계: 병목 지점 상시 점검, 일방통행·완충 지대·대체 동선을 사전 확보
  • 경보·안내 시스템: 다국어 음성·문자 경보, 시각약자를 위한 점멸 신호 병행
  • 의료대응: 임시 응급소 표준 매뉴얼, 자동심장충격기(AED)와 응급키트 배치 의무화

데이터와 투명성

  • 상황일지와 교신 기록의 표준 보관 기한 연장 및 접근 절차 공개
  • 사후 분석 보고서의 공개 범위 확대와 시민 열람권 보장
  • 상시 위험평가위원회 설치와 분기별 안전 리포트 발간

안전은 ‘새 규정’보다 ‘지켜지는 규정’이 중요합니다. 점검-훈련-피드백의 루프를 단단하게 묶는 것이 핵심입니다.

시민이 기억을 실천으로 바꾸는 방법

추모의 마음을 오래 붙잡아두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상 속 작은 행동을 습관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꾸준해야 합니다.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7가지

  • 대규모 행사 방문 전, 이동 동선과 대피 경로를 미리 확인합니다.
  • 혼잡 구간에서는 잠시 멈추고 주변과 간격을 확보합니다.
  • 위험하다고 느끼면 ‘괜찮겠지’ 대신 현장 요원에게 바로 알립니다.
  • 응급상황 목격 시 119 신고와 함께 정확한 위치·상황을 짧게, 명확히 전달합니다.
  • AED 위치를 평소에 확인하고, 심폐소생술(CPR) 교육을 주기적으로 이수합니다.
  • 추모 공간에서는 조용히 머물며, 혼잡을 유발하는 행동을 자제합니다.
  • 공식 추모와 조사 소식을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필요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런 작은 실천이 모이면, 도시의 안전 문화가 실제로 달라집니다. 규정과 매뉴얼은 종이에 적히지만, 그 규정을 살아 있게 만드는 건 결국 시민의 습관입니다.

마무리: 기억은 안전이 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3주기를 지나며 우리는 다시 한번 약속을 확인했습니다. 이름을 부르고, 이야기를 기록하고, 제도를 고치고, 일상을 바꾼다는 약속입니다. 보랏빛 리본은 애도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책임의 색입니다. 애도가 끝난 자리에 남는 것은 공허가 아니라 실천이어야 합니다.

도시는 계속 움직입니다. 그 속에서 기억을 잃지 않으려면, 매해 같은 시간에 멈춰 서는 의식과, 평소의 안전 습관이 함께 필요합니다. 1분의 침묵이 1년의 실천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다시는’이라는 말을 조금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기억은 멈춤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준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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