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어드랍 베이시스트 김상영 영면 음악과 엔진 사이를 달리던 삶의 마지막 트랙
티어드랍의 베이시스트로 무대를 지키고, 자동차 전문 기자로 도로 위의 진실을 기록하던 김상영이 영면했다. 애도의 마음을 담아, 그가 남긴 음악의 결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을 차분히 정리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 김상영
김상영이라는 이름은 두 개의 세계에서 동시에 반짝였다. 하나는 페스티벌 조명 아래서 무릎을 굽히고 다운피킹으로 리듬을 밀어붙이는 베이시스트, 다른 하나는 차가운 테스트 코스에서 스티어링의 미세한 떨림을 단정하게 문장으로 옮기는 기자였다. 두 세계의 공통점은 디테일에 대한 집요함이었다. 무대에서 그는 곡의 중력을 잡는 베이스를, 책상 앞에서는 문장의 중심을 만들었다.
그의 부고 소식은 밴드 공식 채널을 통해 전해졌다. 요약하면, 그는 오랜 투병 끝에 가족과 동료들의 곁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냈고, 밴드는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한 친구’라고 그를 불렀다. 잠깐의 화려함보다 꾸준함으로 자신을 증명해온 사람에게 어울리는 작별 인사다.
“무겁고 슬픈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밴드가 남긴 한 줄의 문장에는, 공연장의 첫 베이스 드랍과 앵콜 후의 정적까지, 함께 쌓아 올린 시간이 압축돼 있다.
티어드랍과의 만남 그리고 베이스 톤의 정체성
티어드랍은 강한 기타 리프와 팝 멜로디 감각을 교차시키는 팀으로 알려져 있다. 그 틈을 메운 건 김상영의 톤이었다. 그의 베이스는 좁게는 킥드럼과 스네어 사이의 틈을 막고, 넓게는 곡 전체의 질량감을 결정했다. 라이브에서 그는 악기와 앰프의 세팅을 공연장마다 미세하게 달리했는데, 공간의 울림과 관객 수, 무대의 반사음을 고려해 로우를 한 칸 줄이거나 미드로 존재감을 올려 밴드의 균형점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동료 사이에서 회자된다.
합류 시기와 앨범 이력에 대한 표기는 매체마다 조금씩 다르다. 중요한 건, 그는 팀의 사운드가 더 단단해져야 할 시기에 들어와 리듬 파트를 ‘고정점’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팬들은 그가 들어온 이후 라이브에서 곡의 호흡이 눈에 띄게 정돈됐다고 회상한다.
무대 위 루틴 작은 습관이 만든 안정감
그에게는 무대에 오르기 전 손을 한 번 털고, 오른발로 템포를 확인한 뒤 뒤돌아 드러머와 눈을 맞추는 루틴이 있었다. 장비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필요한 만큼만 소리를 낸다는 철학이 확고했다. 과한 이펙트를 걸지 않고, 곡의 중저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방식은 티어드랍의 라이브를 무너지지 않게 지탱했다.
기자이자 편집장 엔진 소리와 리프 사이
그는 음악 활동과 동시에 자동차 전문 매체에서 기자,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이력서를 화려하게 장식하려는 태도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 그의 글은 수사보다 데이터와 피드백을 우선했다. 테스트 코스에서 반복 측정을 통해 얻은 수치, 동일 조건 비교, 주행 질감에 대한 솔직한 묘사. 그래서 그의 기사에는 ‘팔지 않는 리뷰’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음악과 자동차는 얼핏 상반된 영역 같지만, 그는 두 영역을 연결하는 언어를 알고 있었다. 그에게 주행감은 ‘템포의 흐름’이었고, 코너는 ‘브리지’였다. 그가 쓴 문장은 무대에서 다듬은 리듬 감각을 닮아, 읽히는 속도가 일정하고 군더더기가 적었다.
편집장의 태도 팀을 빛나게 하는 뒤쪽의 사람
편집장일 때 그는 자신의 이름보다 팀의 이름을 앞세웠다. 초고를 받은 뒤 질문을 던지고, 현장 사진의 구도를 바꾸며, 한 줄의 결론을 얻기 위해 데이터를 더 요청했다. 음악에서 리듬 파트가 빛보다 그림자에 가까운 것처럼, 그는 ‘뒤에서 정리하는 사람’의 역할을 기꺼이 맡았다.
병상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작업 노트
투병 소식은 가까운 이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공유됐다. 항암 치료로 컨디션이 급격히 요동치던 시기에도 그는 곡의 편곡 노트를 업데이트했다. 베이스 라인의 음수는 줄이고, 리듬을 더 타이트하게 묶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남겼다고 한다. 체력 안배가 필요한 만큼, 세션의 길이를 짧게 끊고 파일로 의견을 주고받는 방식이었지만, 그는 끝까지 팀의 사운드를 ‘완성’ 방향으로 밀어붙였다.
그가 남긴 메모 중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소리는 사람을 이긴다”였다.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도, 소리를 정확히 놓는 것만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결국 그가 마지막까지 붙잡았던 건 연주가 아니라 ‘밴드의 합’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스튜디오의 침묵과 파일명 마지막 교정
편집장으로 일한 습관은 스튜디오에서도 드러났다. 녹음 파일명 규칙, 테이크 번호 표기, 메트로놈 설정값 공유. 병상에서 남긴 메시지에도 이런 실무적인 체크가 포함돼 있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빠져도 팀이 흔들리지 않도록 ‘문서화’를 남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동료와 팬들이 증언한 무대 뒤의 사람
애도 글에는 화려한 수식 대신 짧은 문장이 많았다. “끝까지 성실했다.” “리허설부터 앵콜까지 표정이 같았다.” “사람을 먼저 챙겼다.” 이런 말들은 장례식장의 공기처럼 무겁지만, 그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다. 공연 후에는 늘 장비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고 했다. 피곤한 멤버가 있으면 먼저 짐을 들었고, 자원봉사 스태프의 식사를 확인했다. 이런 디테일을 기억해주는 팬들이 적지 않다.
한 팬은 그의 베이스 줄이 끊어졌던 날을 기억한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옆자리에 있던 기타리스트의 시선을 잠깐 끌어 템포를 붙잡고, 드러머와 셋 카운트를 다시 맞춘 뒤 곡을 끝까지 밀고 갔다. 끝나고 그는 ‘운도 연주 일부’라며 웃었다. 무대를 흔들림 없이 지키는 태도, 그게 그의 연주였다.
작은 사인과 긴 기억
사인을 부탁받으면 그는 베이스 픽 대신 얇은 펜을 찾았다. 픽은 연주자에게 남겨져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 사소한 원칙이, 음악을 장식보다 기능으로 보는 그의 시선과 닿아 있다.
디스코그래피와 공연 기록 다시 듣는 법
그가 참여한 시기의 녹음과 라이브 실황을 다시 들으려면, 베이스 위주로 듣는 습관을 잠시 내려놓는 게 좋다. 대신 드럼과의 ‘사이’를 듣자. 킥이 올라올 때 베이스의 어택이 어떻게 한 박자만큼 뒤에서 눌러주는지, 코러스에서는 미드를 살짝 올려 보컬의 하모닉스를 지지하는지. 이런 포인트에 귀를 기울이면, 왜 밴드가 라이브에서 흔들리지 않았는지 체감된다.
페스티벌 무대의 녹음본이 있다면, 스테이지 바깥의 소음까지 포함된 버전을 추천한다. 그 소음 속에서도 베이스가 길을 내는 방식은 그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음감이 뛰어난 연주자는 소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음을 ‘상대’로 두고 자신의 소리를 배치한다.
추천 재청취 포인트
- 인트로: 베이스의 프리 레벨과 킥의 밸런스
- 브리지: 코드 체인지 순간의 네크 이동 소리
- 아웃트로: 서스테인 유지 시간과 페이드의 호흡
장례 절차와 조문 안내
고인의 빈소는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 장례식장 특실 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전 10시에 엄수되며,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으로 알려졌다. 조문을 계획하는 이들이라면, 유가족의 의사를 존중해 시간대 혼잡을 피하고 조문 예절을 지켜주길 부탁드린다. 화환보다는 조용한 인사와 추모의 메시지가 더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장례 관련 정보는 변동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공식 채널을 통해 최신 안내를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유산을 어떻게 기억할까 플레이리스트와 기록 보전
애도는 감정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보전’의 문제다. 그의 연주가 담긴 트랙을 모아 개인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공연 팸플릿과 티켓, 본인이 촬영한 합법적 범위의 사진을 날짜별로 정리해두자. 세부 기록이 쌓이면, 시간이 지나도 왜 그가 특별했는지 설명할 수 있다.
자동차 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모델 변경 주기와 함께 맥락을 묶어두면, 그가 지적했던 장단점이 실제로 이후 모델에서 개선되었는지 추적할 수 있다. 그의 리뷰는 한 편의 텍스트로 끝나지 않고, 산업의 기록으로 남는다.
개인 추모를 위한 작은 제안
- 그가 참여한 시기의 라이브 음원 5곡을 골라 월요일 아침, 금요일 밤에 각각 한 번씩 듣는다. 같은 곡이라도 시간대가 바뀌면 다른 표정이 나온다.
- 그가 쓴 기사 중 ‘데이터 중심’ 리뷰 3편을 묶어 읽고, 본인의 차나 발걸음으로 같은 구간을 걸어보며 체감 포인트를 비교한다.
- 팬 커뮤니티의 기억을 정리할 때는 날짜, 장소, 셋리스트, 장비 메모의 4가지를 기본 필드로 삼는다.
편집 노트 중복 없이 정리한 사실들
이번 글은 여러 매체에 흩어진 정보를 교차 확인해 중복을 피하고, 사실 관계를 간결하게 정리했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그는 티어드랍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했고, 자동차 전문 매체에서 기자이자 편집장으로 활약했다. 투병 중에도 음악 작업을 이어가려 했다는 점은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장례는 서울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되며, 발인과 장지 정보 역시 일관되게 전해졌다.
세부 연도나 합류 시점에 관해 매체마다 표기가 다를 수 있어, 본문에서는 수치 경쟁을 지양하고 ‘역할’과 ‘태도’에 집중했다. 독자에게 중요한 건 그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가이지, 숫자의 정확성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무리 그의 리프가 남긴 질문
어떤 연주는 끝나도 여운이 길다. 무대의 조명이 꺼진 뒤에도, 관객이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계속 울리는 소리. 김상영의 리프는 그런 종류의 음악이었다. 사람 사이의 간격을 지키면서도, 꼭 필요한 순간에는 한걸음 더 다가가는 연주. 그의 이름을 앞으로도 공연 크레딧이나 기사 말미에서 볼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음악을 듣는 방식과 문장을 고르는 습관 속에 그는 남는다.
그의 마지막 트랙이 어쩌면 우리에겐 새로운 첫 곡일지도 모른다. 남은 사람들은 그가 지키던 자리를 흉내 내기보다, 그가 지키던 ‘자세’를 각자의 자리에서 이어가면 된다. 소리는 사람을 이긴다. 그 믿음을 남기고 떠난 사람에게, 우리 역시 소리로 답하면 된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듣고, 다시 읽고, 다시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