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어드랍 김상영 별세 음악과 삶을 끝까지 놓지 않은 베이시스트의 뜨거운 기록
암 투병 중에도 무대와 작업실을 오가던 베이시스트 김상영. 티어드랍의 동료이자 자동차 저널리스트로 살아낸 그의 시간을, 팬들의 기억과 남은 음악으로 천천히 되짚어본다.
1. 우리 곁을 떠난 베이시스트 김상영, 알려진 사실 정리
티어드랍의 베이시스트 김상영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밴드는 공식 계정을 통해 애통한 마음과 함께 부고를 전했고, 동료들은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했던 친구였다고 그를 기억하고 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 장례식장 특실 1호에 마련되었고, 발인은 오전 10시에 엄수되는 것으로 공지되었다.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으로 알려졌다.
공식 발표에 따르면 그는 항암 치료를 이어오다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마지막 순간을 맞았다. 소식은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팬덤에 퍼졌고, 댓글과 추모 글이 이어졌다. 확인 가능한 범위의 사실만 차분히 모아보면, 그는 생의 막바지까지도 밴드의 정규 작업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2. 티어드랍과의 만남 그리고 무대 위의 존재감
티어드랍은 강렬한 기타 리프 위에 팝적 멜로디를 세우는 팀으로, 클럽 씬과 페스티벌에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김상영은 팀의 합류 이후, 밴드 사운드의 하단을 단단히 묶어주는 베이스를 맡았다. 무대에서 그의 움직임은 과장되기보다 정확했고, 리프의 사이를 메워주는 음가의 길이와 어택 타이밍이 정교했다.
현장에선 종종 이펙트 페달 셋업을 조정하는 시간이 길었다. 톤을 만드는 데 유난히 집요한 뮤지션이었다. 어떤 곡에선 드라이브를 살짝 올려 기타의 톤과 밀착시키고, 다른 곡에선 하모닉스를 살려 곡의 호흡을 넓혔다. 관객이 체감하는 ‘밀도’는 그가 쌓아올린 로우엔드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여기서 팀의 색채가 또렷해졌다. 기타가 칼처럼 전진할 때, 베이스는 칼자루를 꽉 쥐듯 흔들림 없이 받쳤다. 특히 템포가 빠른 넘버에서 그가 보여준 오른손 피킹은, 무대의 긴장과 에너지를 동시에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다.
3. 병상에서도 이어진 작업 노트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치료 중에도 작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악보의 빨간 펜은 늘 한가득이었고, 눕거나 앉는 자세의 제한 속에서도 아이디어를 놓지 않았다. 리허설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하는 시기에도, 데모 파일 위에 베이스 아이디어를 덧씌워 공유했다.
그 노트에는 템포 변화에 대한 권고, 드럼 킥 패턴과의 간섭 최소화 메모, 코러스 진입 직전 타격감 확보를 위한 레이턴시 체크까지 적혀 있었다. 음악을 ‘생업’으로 대하는 태도와 ‘삶’으로 붙드는 자세가 동시에 배어 있었다.
종종 우리는 무대에서의 반짝임만을 기억하지만, 그 반짝임에는 보이지 않는 반복과 단련이 쌓여 있다. 그가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것은 결국 ‘다음 공연에서 더 나아지려는 마음’이었다.
4. 음악 밖의 김상영 자동차 기자로서의 또 다른 얼굴
그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자동차’다. 자동차 전문 매체에서 편집 책임을 맡으며, 주행 감각과 공학적 맥락을 대중 언어로 번역해왔다. 시승기를 쓰던 그의 문장은 수치와 체감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았다. 단순히 가속 수치만 나열하지 않고, 코너에서 차의 하중 이동이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솔직히 풀어냈다.
이 직업적 경험은 무대와도 연결된다. 베이스는 밴드에서 섀시 같은 존재다. 전반의 밸런스를 책임지고, 과속을 경계하며, 필요한 순간에만 공격적으로 힘을 준다. 그는 이런 태도를 글쓰기와 연주 모두에서 보여주었다. 수치가 전부가 아니듯, 볼륨이 전부가 아니었다. 맥락을 읽고, 균형을 잡고, 핵심만 남기는 일에 능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무대 매너는 흥분보다 집중 쪽에 가까웠다. 삼켜놓은 에너지가 곡의 피크에서 정확히 터질 때, 관객은 ‘아 이렇게 폭발하는구나’를 체감했다.
5. 팬들이 기억하는 사운드 베이스 톤과 연주의 특징
팬들은 공연 후기에서 자주 “저음이 단단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 단단함은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 연주자의 손과 선택에서 비롯된다. 그가 선호한 세팅은 과도한 왜곡 없이 선명하게 구획된 로우미드, 그리고 잔향을 과신하지 않는 드라이 톤이었다.
곡의 중반부에서 그가 즐겨 쓰던 것은 ‘반 박자 미는 고정음’이었다. 드럼 킥의 뒷면을 살짝 받쳐주면, 밴드는 작게 뛰어오르는 듯한 탄력을 갖는다. 그는 그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플랫와운드와 라운드와운드를 상황에 맞게 바꾸는 실험도 거듭했다. 곡이 가진 온도를 살리기 위해, 표면의 질감까지 조절한 셈이다.
이런 디테일은 녹음실에서 더 빛난다. 베이스 트랙이 미세하게 앞으로 당겨지면 기타의 리프가 선명해지고, 반대로 약간 뒤로 앉히면 보컬이 안정된다. 그는 그 사이에서 맞춤점을 찾는 데 능했다.
6. 동료들이 전하는 짧은 증언 무대 뒤의 성실함
“리허설이 끝나면 가장 늦게 나오는 사람이었다. 무대에서 들리지 않던 주파수를 끝까지 잡으려 했다.”
“볼륨으로 이기려 하지 않았다. 정확한 터치와 서로의 빈틈을 메우는 게 먼저라고 했다.”
증언은 대체로 한 방향을 가리킨다. 그는 조용히 오래가는 타입이었다. 화려한 제스처보다 팀의 완성도를 우선했고, 자신의 파트 뒤에 있는 동료의 파트를 먼저 들었다. 그 태도는 밴드 사운드의 안정감으로 되돌아왔다.
7. 마지막 길 관련 안내와 예의를 지키는 방법
빈소는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 장례식장 특실 1호로 공지되었고, 발인은 오전 10시에 엄수된다. 조문을 계획하는 이들이라면, 가족과 동료들의 의사를 우선해 안내된 절차를 따르는 것이 좋다. 과도한 사진 촬영이나 현장 상황을 온라인에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행동은 자제하자.
또한 팬의 입장에서 정중한 메시지를 남기고 싶다면, 단문의 추모 글과 함께 그가 참여한 음악을 온전히 듣는 시간이 무엇보다 큰 예의가 될 수 있다. 음악은 그가 세상에 남긴 가장 정확한 언어다.
8. 유작이 남긴 질문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듣게 될까
그가 생전 남겨둔 데모와 스케치가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동료들이 말하듯, 그는 끝까지 곡의 방향을 고민하며 아이디어를 건넸다. 언젠가 팀의 결정에 따라 일부 작업물이 공개된다면, 우리는 그가 바라보던 다음 장면을 더 분명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유작이라는 말은 늘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 단어가 주는 무게만큼, 남은 사람들의 책임도 커진다. 성급한 소비가 아닌, 천천히 듣고 오래 기억하는 태도. 그가 좋아하던 방식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9. 인디신과 페스티벌의 기억 티어드랍의 궤적
티어드랍은 클럽의 바닥에서 시작해 페스티벌의 메인 섹션으로 시야를 넓혔다. 작은 무대에서의 사운드체크는 늘 시간이 부족했고, 큰 무대에 오르면 모니터 링은 낯설었다. 그러나 밴드는 무대의 크기에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톤을 정리하고, 리듬을 더 타이트하게 묶고, 보컬이 설 자리를 먼저 남기는 것.
그 과정에서 김상영의 역할은 분명했다. 저음의 덩어리를 무조건 키우기보다, 각 악기의 주파수 공간을 분리하는 선택을 주도했다. 그래서 팀은 페스티벌의 바람이 강한 오후에도 노이즈에 묻히지 않았다. 듣는 이는 ‘음악이 잘 정리돼 들린다’고 말했고, 그 말은 베이스 파트의 정확성과 직결돼 있었다.
10. 글을 마치며 한 사람의 음악이 오래 남는다는 것
누군가의 삶을 한 편의 글로 다 담을 수는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남긴 베이스 라인과 작업 노트, 그리고 글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이다. 음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재생 버튼을 누르면 다시 시작되고, 그 순간 우리는 또 한 번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된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조심스러우면서도 고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추모는, 그가 남긴 사운드를 성실히 듣는 일, 그리고 무대와 글 앞에서 진심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를 이어받는 일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기억해두기: 떠난 이를 향한 추모는 조용한 존중에서 시작된다. 공연에서 그가 쌓아올린 저음의 층을 떠올리며, 오늘 우리는 그의 음악을 다시 한 번 재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