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조선 갈등 1년 유예, 한화오션의 기회와 숙제: 미 해군 MRO 확산·내부 신뢰 이슈 점검
미국의 대중 조선·해운 제재가 1년간 멈추면서 발주 판도가 다시 조정 국면에 들어갔습니다. 한화오션은 미 해군 함정 MRO(유지·보수·운영) 확대라는 호재와, 노조 내부의 투명성 논란이라는 숙제를 동시에 안았습니다.
무엇이 유예됐나: 301조 조치의 현재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밝힌 유예의 핵심은 중국 조선·해운을 겨냥해 부과되던 입항 수수료와 특정 장비 추가 관세의 집행을 1년간 멈춘다는 점입니다. 시점은 합의 이행 개시일로부터 내년 동일 일자 전일까지로 제시됐고, 그 기간에는 해당 수수료와 관세 납부 의무가 정지됩니다.
원래 미국은 중국의 조선·물류·해운 산업이 보조금과 각종 정책으로 과도한 시장 지배력을 행사했다고 보고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중국에서 건조되었거나 중국 기업이 소유·운영하는 선박, 그리고 외국에서 만든 자동차 운반선에 입항 수수료를 매겼고, STS(Ship-to-Shore) 크레인 같은 항만 장비에는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죠.
유예는 정상회담의 정치적 합의 위에서 이루어진 임시 휴전 성격입니다. 합의문에는 협상 계속 의지가 담겼고, 미국은 동맹과의 공조, 자국 조선산업의 재건 노력도 병행하겠다는 메시지를 냈습니다. 즉, 제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 고르기’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글로벌 발주 지형 변화와 한국 조선의 파급
제재가 본격화되던 국면에서는 다수 선사의 발주처가 중국에서 한국·일본으로 이동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습니다. 가격 메리트가 컸던 중국 조선사로의 발주가 둔화되면, 고부가 선종에서 강점을 지닌 국내 조선 3사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분석이었죠.
하지만 유예로 기류가 달라졌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중국 조선사의 수주 공백이 완화되고, 선사들은 관망 모드로 돌아설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NG 운반선, 암모니아·메탄올 추진선, 친환경 컨테이너선 등 고사양 선종에서는 한국의 기술·품질·신뢰 리스크 관리 능력이 여전히 우위입니다.
결국 유예가 ‘한국 조선의 수혜 축소’로 곧장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고부가 시장은 가격뿐 아니라, 연속 생산 경험, 선주 대응력, 기자재 품질망, 디지털 시운전 역량 등 복합 요소가 승부를 가릅니다. 가격 압박은 계속되겠지만, 계약 조건에서 성능 보증과 납기 신뢰를 중시하는 선주가 늘어난 만큼 기술 리더십은 가치가 유지됩니다.
한화오션 변수: 미 해군 MRO의 지역 확산
한화오션은 지난해 미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시라호’를 국내에서 정비하며 함정 MRO 시장에 의미 있는 첫발을 뗐습니다. 그리고 올해, 같은 함정이 경남으로 다시 들어와 정기 점검·수리·내부 리모델링 일정을 수행 중입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지역 협력업체 10여 곳과 함께 ‘분업형 컨소시엄’ 구조로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이 모델은 단순 외주가 아니라, 도장·배관·전장·기계·내장 등 전문 영역을 묶는 체계적 협업입니다. 작업 품질을 표준화하고, 일정 관리를 통합하며, 대외 보안·안전 규정을 균일하게 적용하는 게 관건인데, 한화오션이 총괄 품질 책임과 일정 컨트롤 타워를 맡고 지역사가 깊이 참여하는 구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방식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 마산 가포신항을 중심으로 ‘함정 MRO 클러스터’가 실체를 갖게 됩니다. 이는 단발성 수주가 아닌 정기적·반복적 수요를 기반으로 한 생태계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정비 인력과 해군 선원이 장기 체류하며 지역 소비를 만들어내고, 기자재·서비스 밸류체인이 함께 고도화되기 때문이죠.
경남 클러스터가 의미하는 것
1) 지역경제 동력의 다변화
선박 건조는 수주·인도 사이클이 길고 변동성이 큽니다. 반면 함정 MRO는 계획정비 주기와 예산 집행 규율이 있어 수요가 비교적 예측 가능합니다. 지역 협력망이 갖춰지면 일감의 연속성과 숙련 인력의 고용 안정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
2) 기술·품질 인증의 축적
군함 MRO는 보안과 규정 준수가 매우 엄격합니다. 한 번 신뢰를 얻으면 차기 프로젝트 가점이 생기고, 표준작업서(SOP), 품질 이력(QA/QC), 용접·도장 인증 등의 자산이 쌓입니다. 이는 다른 해군·해안경비대·동맹국 프로젝트로 확장될 여지를 만듭니다.
3) 공급망의 ‘현지화 프리미엄’
미군 프로젝트는 리스크 분산을 중시합니다. 국내 클러스터에서 작업 품질이 검증되면, 향후 한·미 공동 유지체계나 전진 정비 허브 구상과도 맞물릴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역 기반 벤더가 국제 인증과 작업 이력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정비 인력·해군 선원 등 수백 명의 체류로 지역 상권에 직접 수요가 발생합니다.
군 규격 작업 표준을 체득하면서 민수·친환경 프로젝트에도 적용 가능한 공정 혁신이 확산됩니다.
정기 입·출항 스케줄이 쌓이면 수주 포트폴리오 안정화에 기여합니다.
내부 거버넌스 이슈와 신뢰 회복 과제
동시에, 노동조합 내부의 회계·근태 관련 문제 제기가 공개적으로 제기됐습니다. 감사 과정에서 직무 수행 공백 기간의 판공비 지급 여부, 근태 자료 공유 등 투명성 절차가 쟁점으로 떠올랐고, 관련 단위는 특별감사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이런 이슈는 회사의 현장 운영과 직결됩니다. 프로젝트 품질과 납기를 좌우하는 건 결국 사람과 협업 체계입니다. 내부 거버넌스가 흔들리면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지고, 현장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죠. 반대로 투명성 강화는 신뢰 자본을 높이고, 글로벌 발주처의 실사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
실무적으로는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 명확한 규약·규정의 문서화와 공개. 둘째, 회계·근태의 이중 검증과 디지털 기록 일원화. 셋째, 이견을 제도권 절차로 흡수하는 상설 협의 채널입니다. 갈등을 숨기기보다, 절차와 기록으로 해결하는 문화가 대형 프로젝트 시대의 경쟁력이 됩니다.
중장기 체크리스트: 수익·리스크·현장
수익성 트랙
- LNG 운반선·친환경 연료 추진선 중심의 고부가 라인 유지: 원가 상승분을 선가와 옵션에서 얼마나 방어하는가.
- MRO 매출 비중 확대: 반복 일감의 마진 안정과 캐시플로 개선 효과를 수치로 확인할 필요.
- 후속 정비·개장(업그레이드) 패키지 제안: 선주 생애주기 비용 절감과 묶음 계약의 교섭력 상승.
리스크 관리
- 정치 리스크: 301조 유예 종료 시나리오 A/B/C별 가격·납기·조달 플랜 마련.
- 공급망: STS 크레인 등 항만·조선 기자재의 대체 소싱, 국산화·다변화 체크.
- 환율·금리: 선가 계약 통화의 헤지 전략, 장기 선금·중도금 구조 개선.
현장 실행
- 품질 표준: 용접·도장·전장 테스트의 디지털 로그 축적과 실시간 품질 대시보드.
- 안전·보안: 군 프로젝트 보안 규정과 민수 프로젝트 안전 기준의 통합 교육.
- 인력 양성: 신기능(친환경 연료, 전력추진, 스마트십) 자격 인증의 사내 아카데미화.
관전 포인트: 12개월 동안 무엇을 볼까
1) 발주 흐름
유예 기간 중 대형 선주들의 발주 타이밍이 핵심입니다. 관망이 길어지면 2026~2027년 슬롯에 영향을 주고, 반대로 당사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한국에 물량을 일부 고정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건조 슬롯의 희소성을 활용한 선별 계약이 유효합니다.
2) MRO 포트폴리오
월리 시라호 사례가 안정적으로 마무리되면, 유사급 함정 또는 다른 국적 군함·정부선박으로 레퍼런스가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일정 준수와 품질 리포트의 완성도가 다음 수주에 직결됩니다.
3) 내부 신뢰 회복
노조·회사의 상호 신뢰 지표는 현장 분위기에 그대로 투영됩니다. 절차적 정당성에 기반한 조치가 신속히 정리되면, 외부 이해관계자의 신뢰도도 회복 속도가 빨라집니다.
4) 친환경 전환 속도
암모니아·메탄올·LNG 이중연료의 안전기준 업데이트, 탱크·연료공급시스템(FGSS) 안정화 지표, 클래스 인증의 누적 실적이 중요합니다. 신기술 리스크를 선제 관리하는 기업이 선주와의 동반자 지위를 얻습니다.
결론: 유예의 시간, 실력의 시간
이번 1년 유예는 단기 충격을 완화했지만, 시장의 근본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고부가 시장을 지키기 어렵고, 반대로 기술·품질·신뢰의 3박자가 맞아떨어지면 유예 종료 이후에도 수주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한화오션은 미 해군 MRO의 지역 확산이라는 강점을 살려 안정적 현금흐름과 글로벌 신뢰를 축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시에 내부 거버넌스 정비는 미룰 수 없습니다. 절차와 기록, 공개와 검증을 통해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조선업은 대규모 협업 산업입니다. 유예의 12개월은 정치가 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기회로 바꾸는 건 결국 현장의 실력과 조직의 신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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