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발효 일기: 집에서 즐기는 김치·요거트·사워도우의 기본과 응용
주방 구석에서 천천히 익어가는 미생물의 시간, 우리 식탁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발효의 세계
발효가 우리 일상에 남기는 것
퇴근길 장바구니에 배추 한 통을 담던 날이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소금을 뿌리고 자잘한 채소들을 썰어 넣다 보니, 부엌은 금세 고요한 실험실이 되더군요. 다음 날, 김치통에서 아주 작게 올라오던 기포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매일 미생물과 함께 작은 공동 작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요.
발효는 맛의 층을 늘리고, 재료의 수명을 연장하며, 식탁에 이야기를 남깁니다. 오늘은 김치, 요거트, 사워도우 세 가지를 중심으로, 초보도 해볼 수 있는 간단한 방법과 실패 확률을 낮추는 실전 팁을 정리했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고, 오래 기다릴수록 더 깊어지는 집의 맛을 함께 만들어 봅니다.
미생물과 온도의 과학
맛을 만드는 작은 엔진
발효의 중심에는 유산균과 효모 같은 미생물이 있습니다. 유산균은 당을 젖산으로 바꿔 산미와 보존성을 높이고, 효모는 당을 분해해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만듭니다. 김치의 톡 쏘는 산미, 요거트의 걸쭉함, 사워도우의 풍미와 기공은 이들의 합작품입니다. 중요한 건 각 미생물이 편안한 온도와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입니다.
온도와 시간의 균형
대부분의 가정 발효는 20~25°C에서 안정적입니다. 온도가 너무 낮으면 발효 속도가 느려지고, 너무 높으면 과발효와 잡미가 생기기 쉽습니다. 온도계가 없다면 손등으로 용기 겉면을 만져 미지근함을 느끼는 정도가 대체로 적당합니다. 시간을 길게 가져갈수록 산미는 강해지고 질감은 단단해지거나 부드러워지는 방향으로 변합니다.
김치: 계절을 담는 레시피
재료와 준비
배추, 굵은소금, 물, 찹쌀풀 또는 밥, 고춧가루, 다진 마늘과 생강, 멸치액젓 또는 새우젓, 쪽파와 무 정도면 충분합니다. 배추는 3~4cm 두께로 절반 혹은 4등분 하여 굵은소금에 2~3시간 절이면 줄기의 단단함이 유연해집니다. 씻을 때는 소금기가 70% 정도만 빠지도록 가볍게 행궈 숨을 남겨두는 게 좋습니다.
양념의 균형
양념의 점도는 발효 속도에 영향을 줍니다. 찹쌀풀을 넣으면 초기 발효가 빠르고, 밥을 으깨 넣으면 은은한 단맛이 생깁니다. 액젓과 젓갈은 감칠맛과 숙성 향을 더하지만 과하면 비릿해질 수 있으니, 배추 1통 기준 액젓은 종이컵 1/2 정도에서 시작해 맛을 보며 조절합니다.
담그기와 숙성
배추 잎 사이사이에 양념을 얇게 펴塗하듯 바르고, 용기는 가득 채우되 표면에 공기층이 최대한 없도록 눌러 담습니다. 하루는 실온(20~22°C)에서 시작해, 기포가 보이기 시작하면 냉장 보관으로 전환합니다. 실온 1일 + 냉장 3일이면 산미와 아삭함이 균형잡힌 초발효 상태를 즐길 수 있습니다.
요거트: 8시간의 부드러움
우유와 스타터 선택
살균 우유와 무가당 플레인 요거트(활성 유산균 표시)를 준비합니다. 우유 1L에 플레인 요거트 100g이면 충분합니다. 락토스가 낮은 우유를 쓰면 산미가 다소 완만하게 올라옵니다.
가열과 접종
우유를 가장자리 기포가 돌 정도까지 천천히 데운 뒤(약 80~85°C), 43~45°C로 식혀 스타터를 섬세하게 섞습니다. 높은 온도에서 스타터를 넣으면 균이 약해질 수 있고, 너무 낮으면 응고가 느려집니다. 보온 용기나 전기밥솥 보온 기능, 혹은 두꺼운 수건으로 감싸 6~8시간 두면 부드러운 젤이 형성됩니다.
농도와 산미 조절
더 단단한 그릭 스타일을 원하면 면포로 2시간 이상 유청을 빼세요. 산미는 시간을 늘릴수록 강해집니다. 완성 후 즉시 냉장해 안정화 시간을 4시간 정도 가지면 맛이 둥글어집니다.
사워도우: 기다림이 주는 탄력
스타터 키우기
통밀가루와 물을 같은 비율(예: 50g:50g)로 섞어 실온에 두고, 매일 같은 시간에 반씩 버리고 같은 양을 보충하는 ‘디스카드-급이’ 방식으로 5~7일 반복합니다. 두 배로 부풀고 향이 상큼해지며 물 위에 띄운 반죽이 잠시 떠오르면 준비 신호입니다.
반죽과 발효
강력분 500g, 물 350~375g, 소금 10g, 스타터 100g을 섞어 30분 오토리스 후, 스트레치&폴드를 30분 간격으로 3~4회 반복합니다. 24~26°C에서 3~4시간 벌크 발효 뒤, 모양을 잡아 냉장 8~12시간 숙성하면 풍미와 조직이 안정됩니다. 예열한 무쇠냄비에 230°C 20분 뚜껑 덮어 굽고, 210°C로 낮춰 20~25분 더 구워 껍질의 색을 조절합니다.
위생과 안전 체크리스트
- 손과 도구는 작업 전후로 따뜻한 물과 세제로 세척하고, 물기를 최대한 말린다.
- 유리나 스테인리스 용기를 사용해 냄새 배임과 변색을 줄인다.
- 재료는 신선도를 확인하고, 손상된 부분은 과감히 제거한다.
- 표면에 솜털형 곰팡이나 이상한 색/냄새가 느껴지면 섭취하지 않는다.
- 발효 용기는 가득 채우되 팽창 여유 공간을 10% 정도 둔다.
- 실온 발효 후에는 냉장으로 전환해 속도를 안정화한다.
간단 비교 표
| 항목 | 김치 | 요거트 | 사워도우 |
|---|---|---|---|
| 핵심 미생물 | 유산균(자연 발효) | 유산균 스타터 | 효모+유산균(스타터) |
| 권장 온도 | 20~22°C 시작 후 냉장 | 43~45°C | 24~26°C |
| 소요 시간 | 실온 1일 + 냉장 3일~ | 6~8시간 | 하루~이틀 |
| 맛/식감 포인트 | 아삭함·산미·감칠맛 | 부드러움·상큼함 | 고소함·기공·크러스트 |
보관과 활용 아이디어
김치는 공기가 닿지 않도록 표면을 평평하게 눌러 김치국물을 올려주고, 냉장 깊은 칸에 둡니다. 덜어 먹을 때는 젓가락 대신 집게를 쓰면 공기 혼입이 줄어듭니다. 남은 묵은지는 볶음밥, 김치전, 돼지고기 찜에 쓰면 산미가 요리의 중심을 잡아 줍니다.
요거트는 3~5일 내에 먹는 것이 식감이 깔끔합니다. 유청은 버리지 말고 스무디나 팬케이크 반죽에 활용하면 은은한 산미와 단백질이 더해집니다. 허브와 소금, 올리브오일을 섞어 디핑 소스에도 응용해 보세요.
사워도우는 식힌 뒤 종이봉투+밀폐용기 이중 보관을 하면 껍질의 바삭함을 더 오래 유지합니다. 남은 빵은 큐브로 썰어 오븐에 말려 크루통을 만들거나, 올리브오일과 마늘을 더해 브루스케타로 재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문제 해결 가이드
김치가 빨리 시어졌어요
실온 발효 시간이 길었거나 설탕·풀의 양이 많을 수 있습니다. 다음번에는 실온 12시간 내로 줄이고 바로 냉장 숙성하세요. 보관 중에는 표면을 김치국물로 덮어 공기와의 접촉을 최소화합니다.
요거트가 묽어요
접종 온도가 낮거나 스타터 비율이 부족했을 수 있습니다. 43~45°C 유지, 스타터 10% 전후를 지키고, 다음번에는 1시간 더 발효해 보세요. 가열 단계에서 우유를 더 오래 데워 단백질 변성을 높이면 점도가 향상됩니다.
사워도우가 퍼져요
글루텐 형성 부족 혹은 과발효일 수 있습니다. 스트레치&폴드 횟수를 늘리고, 벌크 발효를 30분 단축해 보세요. 성형 후에는 냉장 숙성으로 구조를 가다듬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일상 루틴에 발효 더하기
주중에는 짧고 확실한 요거트를, 주말에는 김치 한 통을, 공휴일에는 사워도우를 굽는 루틴을 추천합니다. 한 가지씩만 꾸준히 굴리다 보면 주방의 리듬이 생기고, 식재료를 낭비하지 않게 됩니다. 냉장고의 남은 채소를 김치 부재료로 돌려 쓰고, 우유 유통기한이 임박하면 요거트를 만들며, 남은 스타터는 팬케이크로 활용해 보세요.
발효는 맛을 내는 기술이자 시간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급하게 만들면 감춰진 향이 나오지 않고, 너무 오래 두면 균형을 잃습니다. 그 사이의 적정을 찾는 과정이, 생각보다 즐겁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소금 종류가 발효에 영향을 주나요?
굵은소금은 용출 속도가 느려 삼투압이 안정적으로 작용해 식감이 고르게 유지됩니다. 미세한 소금은 과절임으로 이어질 수 있어 사용량을 줄이는 편이 좋습니다. 무첨가 천일염을 권장합니다.
Q. 발효 냄새가 강한데 정상인가요?
톡 쏘는 산미, 고소한 곡물 향, 우유의 달큰한 향은 정상 범주입니다. 암모니아, 역한 썩은 냄새, 금속성 향이 난다면 중단하고 위생 상태와 원료 신선도를 점검하세요.
Q. 설탕을 넣어야 하나요?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초기 미생물의 먹이가 되어 발효 시작을 돕습니다. 과하면 산미가 급격히 올라가므로 소량만 사용하거나 과일·밥 등 자연 당원을 활용하세요.